2024.11.10. (수 2:1-7) 문대원 목사님
본문말씀
[수2:1-7]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Jos 2:1-7, NIV] 1 Then Joshua son of Nun secretly sent two spies from Shittim. "Go, look over the land," he said, "especially Jericho." So they went and entered the house of a prostitute named Rahab and stayed there. 2 The king of Jericho was told, "Look, some of the Israelites have come here tonight to spy out the land." 3 So the king of Jericho sent this message to Rahab: "Bring out the men who came to you and entered your house, because they have come to spy out the whole land." 4 But the woman had taken the two men and hidden them. She said, "Yes, the men came to me, but I did not know where they had come from. 5 At dusk, when it was time to close the city gate, they left. I don't know which way they went. Go after them quickly. You may catch up with them." 6 (But she had taken them up to the roof and hidden them under the stalks of flax she had laid out on the roof.) 7 So the men set out in pursuit of the spies on the road that leads to the fords of the Jordan, and as soon as the pursuers had gone out, the gate was shut.
규범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현실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규범을 변화하는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천만관객 “나쁜 인간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는 것이지”
작가는 절대적인 규범을 인정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자일 수 있겠구나.!!
인간의 본성은 나쁘지 않은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나빠진다.
상황윤리에 대한 주장 - 이것이 틀렸음을 증명함 오늘 설교의 목표
모든 것이 다 좋은 상황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람 : 얼마든지 있다.
대기업 미국 주재원 - 성인클럽, 모든 것을 잃음. 모든 상황이 좋아도 인간은 어리석은 선택을 내릴 수 있구나!!
모든 상황이 나쁨에도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 : 가정폭력 아버지, 어머니 도망하여 아이들을 키우는 환경, 기도로 자녀를 양육. 올바르게 살아감
위와 같이 상황윤리는 옳지 않다.
1. 두 가지 규범이 충돌할 때
여호수아에 의해 여리고성에 정탐꾼 2명을 보낸 상황
(수 2: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온 자이니라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것 VS 진실을 말하는 것
(수 2:4-5) 성문 닫을 때쯤 나가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약 2:25)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의 행동을 믿음으로 평가, 의로운 행동 -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라합
(수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인간적인 연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었다.
(출 1: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이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히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산파들이 아이들을 살림 - 믿음으로 내린 결정, 바로왕 보다 높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기독교의 규범은 철학적인 규범이 아니라 인격적인 규범이다.
성경은 하라, 하지 말라 하는 법 조문이 아니다.
2. 상황 윤리의 주장과 그 한계
상황윤리 : 원론적인 규범을 이야기하지 말고, 각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보아라.
조셉 플레처 “상황윤리” : 자유주의 신학자 -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모두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
6가지 명제 : 성경전체가 말하는 진리에서 벗어나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는 것을 느낌
- 오직 사랑만이 본질적으로 선한것이다.
- 행동을 결정하는 유일한 규범은 사랑이다.
- 사랑과 정의는 동일한 것이다.
- 사랑은 이웃의 행복을 구하는 것이다.
- 사랑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 사랑의 결정은 규범적이지 않고 상황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 자유주의 신앙을 따른다.
자유주의 신학은 라면 같다.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은데 건강에 좋지 않다.
사랑과 정의는 동일한 것이다. :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냥 다 용서해 주면 되지..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기 위해서
(시 1)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 - 누군가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크리스천이 전쟁에 참여해도 될까? 십계명 살인하지 말라 - 비폭력주의(산상수훈)
초대교회 : 평화주의자 - 교회를 박해하는 로마제국 군대에 징집되는 것을 거부
313년 기독교 공인
319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
게르만 족이 로마 포위 약탈 - 기독교 왕국 로마가 공격을 받음, 어거스틴 교구 - 정의로운 전쟁 개념을 주장
정의로운 전쟁 : 방어를 위한 전쟁, 과도한 무력 사용 금지, 정당한 권위를 가진 대표자의 선언
(창) 아브라함 조카 롯 가나안 공격당할 때 전쟁에 참여함
(창 14:14-15)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기릴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기드온 - 미디안 족속, 삼손 - 블레셋 족속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크리스천 : 정의로운 전쟁에 참여, 국가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3. 사랑과 율법은 배치되지 않는다.
사랑이 사려 깊은 것이라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
알코올중독자에게 술을 사주는 것? 아니면 그를 도와주는 것?
상황윤리 : 사랑만이 유일한 규범
성경에서의 사랑과 정의가 똑같지 않다.
조셉 플레처 : 만일 율법의 조항이 사랑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율법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율법 사이에 가끔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사랑과 율법은 동료가 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일 4:8)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사랑과 율법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정하는 규칙에는 부모의 사랑이 담겨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녀를 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율법은 배치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
예수님 :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고전 13장 사랑장 - 사랑은 동사로 되어있다.
사랑과 계명, 사랑과 율법은 배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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